편집자노트 2011. 6. 20. 12:42
맞춤법이 글의 질을 결정하는 결정적 요소는 아니다. 하지만, 지켜야 할 규칙인 것은 분명하다. 아주 작은 것까지 하나하나 잡아내서 고쳐나가는 편집자를 보면 어떤 땐 쪼잔해보이기까지 하고 심지어는 병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도 편집자는 쪼잔해보이기까지 하고 어떤 땐 병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작업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곰곰히 생각해봤다. 에이~ 그거 맞춤법 좀 틀리면 어때?

우리가 어떤 글이 "아름답다, 멋있다, 울림이 있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직관이 주는 결과이겠지만, 그 직관을 만드는 것은 다름아닌 보이지 않은 디테일의 규칙성 때문인 것 같다. 맞춤법이 이러한 보이지 않은(실제로는 보이지만) 규칙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그외에 비문이 없어야 하거나 제목이 제대로 처리되고 단락이 잘 나누어지고 그림이 적재적소에 들어가야 하고 등등의 규칙이 있는 것 같다.

<해커와 화가>라는 책에서도 명작의 보이지 않은 디테일을 강조하고 있고 프로그래머도 코딩 스타일이라는 규칙을 지켜 직관적으로 코드를 아름답게 보이게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 같다.

또한 의사소통에서도 잘 보이지 않은 기본적인 규칙들이 있다. 말을 꼬지 않고 제대로 한다거나 기본적인 예의를 갖춘다거나 상대방을 유쾌하게 하는 적절한 유머를 구사한다거나.

똑똑한 맞춤법 얘기에서 시작해서 의사소통까지 논리적 비약이 있기는 하지만 보이지 않은 규칙을 잘 지켜내는 것도 편집자의 중요한 소양 중에 하나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헷갈리는 맞춤법을 일일이 테스트해보는 것은 좀 짜증나는 작업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검사기가 알려준 대로 하면 맞는다는 보장도 없고. 맞춤법 신경 쓰다 비문을 놓치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편집 프로세스마다 단계가 있기는 하지만.


흐미~~ 더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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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로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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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예정도서 2011. 6. 16. 00:55
7월에 로드북의 첫 책이 출간됩니다.
저자 중 한 분인 박재성님의 페북 글처럼("지난 10년 돌아보고 앞으로 10년을 준비할 기회가 되었다"), 제게도 IT 출판의 편집자 인생에 의미 있는 터닝포인트가 될 책입니다.
많은 독자가 보기를 바라지만, 무엇보다 이 땅의 프로그래머에게 "은은한 울림"을 줄 수 있기를 더 바래봅니다.

프그래머 평균정년 35세,
당신은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시간은 꿈을 무디게 합니다. 바쁜 현실은 비전을 흐리게 합니다.
그냥 시간이 가기 때문에 혹 그 자리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평균정년 35세를 훌쩍 넘긴 6인의 프로그래머, 
그들의 뜨거운 이야기를 만나보십시오.
다채로운 프로그래머의 삶을 추적해보고 
프로그래머에게 다시 한번 처음의 설렘과 꿈을 주고 싶습니다.


"나의 꿈은 훗날 나이가 많이 들어서 은퇴를 할 때까지 지금처럼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회사에서의 위치가 달라져서 잠시 다른 일을 하게 되는 상황이 된다고 해도 프로그래밍을 완전히 손에서 내려놓을 생각은 없다. 새롭게 등장하는 기술이나 언어의 동향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나의 프로그래밍 기술을 더 날카롭게 벼리는 일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
_본문 중에서


 


 
posted by 로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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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노트 2011. 5. 27. 20:25
편집자가 책을 세상에 내보내고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 첫 독자평이 올라오는 때이다. 온라인 서점이 발달되다보니 독자 반응은 가히 실시간이다. 그리고 직설적이다. 네거티브한 내용이든 포저티브한 내용이든 대부분 직설적이다.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중간정도의 애매한 서평을 남기는 경우도 더러 있다.

포저티브이든 네거티브이든 분명 이유가 있다. 이유없는 독자 클레임은 없다. 우리가 쓰는 전자제품이든 책이든 똑같은 소비재다. 쓰다가 열받으면 AS를 신청하든지 어디다가 분풀이라도 해야 하는 게 독자의 마음이고 소비자의 마음이다.

그걸 알면서도 편집자도 사람인지라 서슬 퍼런 서평에 시퍼렇게 멍이 든다. 이때 편집자의 자세가 어떠느냐에 따라 그들의 성장맵이 달리 그려진다. 정말 중요한 시점이다. "운이 없었다." "뭐~ 그정도의 서평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지 뭐." "이런 식이면 편집자로서 성장은 아득하다. 출판사의 성장도 요원하다.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하고 고민하고 정리해내고 그것을 다음 책에 하나하나씩 반영할 때 비로소 편집자는 쭉쭉 뻗어갈 수 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책은 없다. 다만 독자의 절박한 마음을 조금씩 이해해나가고 독자와 조금씩 교감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편집자의 덕목 중 중요한 한 가지인 것은 분명하다.

독자 클레임은 베테랑 시니어 편집자도 피해갈 수 없다. 책이라는 게 철저하게 계획되고 의도된 제픔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일부는 비판적 읽기가 전제되어야 한다며 이런 클레임을 애써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겸손하지 않고 교만한 자만심이다. 매너리즘이다. 본래 의도의 사가지대에 있는 독자의 클레임도 이유없다 기각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 한번 자신을 되돌아볼 시점이다.

사각지대를  좀더 쉽게 표현하면, 컨텐츠가 타깃하고 있지 않은 독자를 일컫는다. 예를 들어, "수준 높다는 것과 어렵다"는 분명 다른 말이다. 초보자를 위한 배려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래서 초보자가 중급 이상 타깃의 책을 구입해서 읽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눈도 '저자의 내공'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당장은 그 책을 활용할 수는 없지만, 이때는 자신을 탓하지 책을 탓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희한하게 무플보다는 악플이 나을 때도 있다. 서평도 올라오지 않는다는 것은 관심을 두는 독자가 없다는 얘기와 같기 때문이다. 이때의 악플은 분명 익명의 인터넷 악성 댓글과는 분명 다르다. 상처받아야 할 게 아니라 약으로 써야 할 소중한 재료다.

가끔 예전에 내가 냈던 책들의 서평을 다시 한번 읽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부끄럽기도 하다. 그때의 두근거림, 가슴쓰라림, 벅찬 감동, 그런 것들이 다시 가슴속에서 일렁인다. 인터넷 서점은 절판하더라도 책 정보는 남긴다. 서평도 고스란히 남긴다. 10년 전의 책이라도. 가끔 독자 서평의 추억을 더듬어 올라가면 서 출판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게 다독인다.

"책 값이 아깝지 않았다."
독자에게 들었던 최고의 서평이었다.
posted by 로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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