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노트 2011. 5. 27. 15:31
편집자로 성장한다는 것, 각 분야별로 많이 다를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전문서 분야에서 편집자로 성장했기 때문에 주로 이 분야에서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사실 다른 분야는 기웃거리지도 않았고 흥미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맨처음 나에게 편집자로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텍스트와 페이지의 압박이었다. 첫 책이 번역서였는데, 500여 페이지가 넘었으니. 사실, 지금은 200페이지나 800페이지나 비슷한 압박으로 다가오지만. 당시는 페이지에 따라 그 압박 규모가 달라졌던 것 같다. 거기엔 난이도도 있었지만.

내가 전문서 분야에서 편집자로 성장한다는 것은, 텍스트나 페이지의 압박에서 점점 벗어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단순히 시간이 가기때문에 기능공처럼 익숙해져가는 게 아니라 어떤 단계에서 어떻게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하는 스케줄링 능력과 각 단계에서 돌발적인 문제에 대응하는 능력이 점점 나아지면서 자연스레 그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나 더 추가한다면 첫 단추에 해당하는 설계능력이 또 한 가지 있겠지만.

처음이건 지금이건 모든 텍스트는 편집자의 날카로운 눈을 거쳐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편집자가 추정이나 예측에 의해 텍스트를 판단하고 시장에 내보내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는 것 같다. 그만큼 텍스트를 만지는 것은 노가다가 바탕에 깔려있어야 하지만, 생각없는 노가다는 편집자의 심신만 지치게 할 뿐, 성장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나중에 나는 후배들을 어떻게 키워내야 할까? 아직 첫 깃발(첫책)도 꽂지 못한 내가 너무 먼 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아닌지.
이미 이전 출판사에서 시니어편집자로서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그런 미래가 설렘보다는 긴장감으로 다가온다.


posted by 로드북
: